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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루


안변군 읍지구에 위치한 가학루는 조선봉건왕조때 안변객사의 부속건물로 지은 다락집이다.

가학루는 뒤로 학성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무연한 안변벌을 굽어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있다.

안변의 력사를 소개한 《학성지》에 의하면 가학루는 738년-742년에 세웠다고 한다. 그후 1486년에 다시 지었다.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침략자들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하여 훌륭한 건축술로 잘 지은 학성관의 주요건물들은 다 없어지고 가학루만 겨우 남았다.

가학루란 학이 날아와 앉은것 같은 루정이라는데서 생긴 이름이다. 가학루는 봉건관료들이 지방에 나갔을 때에 머무르던 안변의 객사(려관)인 학성관의 연회장이였다.

루정은 다듬은 긴 돌로 나지막하게 쌓은 밑단우에 세운 정면 3간(11.07m), 측면 3간(7.45m)의 포식두공을 얹은 겹처마합각집이다. 기둥은 정면과 측면에서 다같이 고르게 배치하였다. 기둥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우, 아래를 이어 16개를 세웠다. 2층다락마루는 대창도 굵고 소창과 널판도 모두 두툼하여 듬직하다.

이 루정에서는 두공조직이 특이하다. 두공은 안팎 다 3포로 짜올렸다. 제공은 닫긴형으로 되여있어 제공과 첨차의 형태가 같다.

가학루에서는 기둥과 보의 물림에서도 특색을 찾아볼수 있다. 그것은 앞쪽 중심기둥은 머리부분에 대들보끝을 물리고 곧추 올라가 동자기둥을 대신하여 중도리를 받들게 하고 뒤쪽 중심기둥은 대들보밑을 받치고 그 기둥우로 건너간 대들보우에 동자기둥을 세워 중도리를 받치게 한것이다. 중도리와 물린 중보우에는 마루도리를 떠받드는 대공을 얹었다. 대공은 조각장식이 소박하고 간결하나 건물의 억세기를 높이고 안정감을 자아내게 한다. 천정은 통천정을 하였다. 중도리안쪽을 좁히고 정연하게 배치된 서까래와 부채살서까래가 드러나보이는 통천정은 시원하면서도 아름답다. 소박하고 간결한 모루단청을 입힌 가학루는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히고 아담하게 꾸려졌다.

다락집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안팎의 포수가 꼭 같은것, 두공조각의 기법과 배부른 두리기둥 등은 고려시기의 건축수법을 많이 이어 받은 조선봉건왕조초기의 건축기술을 뚜렷이 보여주며 건물의 짜임새와 지붕의 곡선미는 주위환경에 잘 어울린다.

가학루는 1951년에 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주체46(1957)년에 원상대로 복구되여 국보적유적으로 잘 보존관리되고있으며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널리 리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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